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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딘/번역] Grey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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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Grey

저자: Valyria / 출처: http://archiveofourown.org/works/978693/chapters/1969107

등급: Explicit (성인)

줄거리: 이 세상의 사람들은 진정한 메이트를 찾을 때까지 색깔을 볼 수 없다. 딘이 무덤에서 나오던 날, 그가 처음으로 본 것은 파란 하늘이었다. 

카스티엘이 그를 구덩이에서 끌어올렸을 때, 그는 저도 모르게 딘의 짝이 된 것이다.


주의: 오메가버스+엠프렉+앵슷+딘의 POV (딘의 시점)+슈내 시즌9 까지의 스포 주의.








19. (Continued)




그가 일을 그르친 것은 모두 긴장을 놓아버린 탓이었다. 서재의 큰 안락의자에서 잠이 들었다 깬 그는 잠에 취해 기진맥진한 상황이었다. 입이 텁텁했고 눈을 도통 뜰 수가 없었다.



그는 샤워를 하기 위해 비틀거리며 일어나서는, 서재 근처의 욕실이 아니라 그의 방 근처에 있는 작은 욕실로 향했다. 따뜻한 물은 그에게 놀라움으로 가득 찬 기쁨을 주었으며, 그를 깨우기는 커녕 선 채로 스르르 잠에 빠지게 만들었다.



마침내 그는 몸을 이끌고 새로 세탁한 옷을 입었다. 커피라도 마셔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나이 든 할아버지처럼 다시 낮잠을 자게 될 지도 몰랐다.



샘과 케빈은 첫번째 시험을 해석하는데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똑같은 성경 구절이나 반복되는 구문에 대해 완전히 지루함을 느낀 딘은 그들을 무시하고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는 아직 별 다른 기기가 없었으므로, 그는 새 주전자를 꺼내고선 하품을 쩍 했다. 지금 시간이 몇시인지도 알 수 없었다. 벙커는 꼭 카지노 같았다. 자연광이 없었으니까. 커피가 우러나올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고자 등을 돌린 그는 부엌을 가로질러 자신을 쳐다보는 샘과 케빈의 시선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샘은 과호흡하듯 숨을 씩씩 내뱉고 있었고, 케빈의 눈은 거의 튀어나올 듯 휘둥그레졌다.



딘은 얼굴을 찌푸렸다. "음, 애들아?"



샘이 커다란 손으로 그를 붙잡고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는 바람에 딘의 목소리는 툭 끊어진 것처럼 들렸다.



동생이 그의 목에서 나는 향에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에 딘은 충격으로 얼어붙었다. "뭐하는 거야, 새미?" 그는 화를 내며 알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샘이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대자 딘은 본능적으로 얼어붙었다.



그제서야 작은 초록 병에 담긴 데오드란트와 위장 향수를 뿌리지 않은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젠장."



샘은 뒤로 물러나 딘을 내려다보며 팔에 멍이 들 정도로 그를 꽉 붙잡았다. "임신했잖아." 그가 책망하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딘은 샘이 화난건지, 기쁜건지, 불쾌한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동생과 그의 나무냄새 나는 향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알던 그라도, 지금 당장으로서는 모든 향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알아내기 힘들었다.



"맙소사." 케빈이 말했다. "형 오메가였어?"[각주:1]



샘이 어깨 너머의 작은 머리통을 쏘아보며 말했다. "이건 사생활이야, 케빈. 형과 좀 얘기해봐야겠어."



케빈은 손을 들어올렸다가 다시 내리며 말했다. "어...그러던지."



딘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있지, 말하려고 했는데."



"언제?!" 샘이 발끈하자 딘이 움찔했다. 그리고 맞았다. 그는 열받은 상태였다. 그리 오래가지는 않겠지만, 딘은 사탕을 입에 물기라도 한 것처럼 '통제 불가능의 예민하고 행복한 임신한 오메가'의 향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맙소사, 형. 우린 사냥 중이었잖아."



딘은 고개를 치켜올렸다. "조심하고 있었어." 웅얼거리는 목소리였다.



"조심했다고?!" 샘이 무슨 말이든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이내 생각을 바꾼 모양인지 입을 확 다물었다. 그는 딘을 놔주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선 "젠장" 이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다 한숨지었다. "맙소사. 형한테서 크리스마스같은 냄새가 나. 계속 화를 내기도 힘들다고."



"허." 딘은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편리한 방법이었다.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샘은 그에게 계속해서 화를 내지 못할 것이었다.



"그래서, 연옥에서 그런거야?" 



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옆에서 커피 머신이 김을 내뿜었다.



그런 그를 간신히 노려보는 샘이었다. "삼개월이야. 형은 세 달동안 나에게 거짓말을 한 거라고."



"그 땐 몰랐어. 게다가 일이 정신없게 돌아갔잖아. 안 그래?"



"캐스도 알아?"



"어. 그걸 나한테 말해준 사람이니까."



그 즉시 샘의 얼굴은 노여움으로 납빛이 되었다. "그러고도 형이 사냥을 하게 내버려뒀다고? 형이 위험에 빠지도록?"



딘은 팔짱을 끼고선 말했다. "내버려두면 안 돼?"



"그런 말 하지도 마!" 샘이 그의 말을 확 끊었다. "형도 사냥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잖아. 그래서 여지껏 사실을 숨겨온거고. 그럴 생각은 하지도 말고, 내가 형을 억지로 통제시키는 사람인 것처럼 만들지도 마." 그는 깊은 호흡을 천천히 내뱉은 뒤 눈을 감았다. "형이 다쳤을 지도 모르니까 화가 난 거야. 형과... 아기가. 나한테 말해줬어야지."



"계속 사냥을 하게 해줬을 것처럼 말한다?"



"형이 고집부리면서 멍청하게 굴면 그렇게 하게끔 놔뒀을지도 모르지!" 샘이 소리쳤다. "형이 유일하게 말을 들은 알파는 아빠 뿐이라는 건 누구나 알잖아!"



"아빠? 여기에 아빠를 끌어들여?"



"아빠라면 여기서 뭐라고 말했을 것 같아? 응?" 



그렇게 말하는 샘의 목소리에는 조소가 담겨있었다.



"임신했는데도 띵즈를 잡으러 다니다니."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젠장. 이러지 마, 형."



존 윈체스터라면 아홉 달 동안 그를 방에 가뒀을 것이다. 장남이 새끼를 낳는다는 사실을 혐오할지언정, 그가 가장 집착하는 것은 바로 가족이었으므로. 자기 손자를 위해서라도 딘이 위험을 감수하도록 놔둘 일은 절대 없었다. 



딘은 쓰지 않은 머그컵을 꺼내 갓 내린 커피를 따랐다. "뭐, 어쨌든 지금은 별 일 없잖아. 그럼 된거지." 그가 성난 동생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화 좀 작작 내."



그의 말에 한숨을 깊게 쉬는 샘이었다. "형한테서 나는 무지개와 유니콘 향 때문에 화내지도 못한다는 걸 다행인 줄 알아." 



딘이 인상을 잔뜩 구겼다. "무지개와 유니콘? 뭐야, 내가 무슨 리사 프랭크 스티커야?"[각주:2]





~~~




샘이 충격에서 벗어남에 따라 벙커에는 모두를 온화하게 만들어주는 'Eau de rainbow'[각주:3] 향이 퍼져나갔고, 그 영향 탓인지 딘은 180도 달라지게 되었다.



그는 그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했다. 아직 몇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려면 몇개월 하고도 또 몇개월이 남았지만, 그는 남성 오메가의 출산과 태아기, 좋은 산부인과 시스템이 갖춰진 병원을 조사했다. 



딘은 이제 커피를 비롯한 카페인 음료를 마시지 못하게 되었다. 주방에는 처음보는 채소들이 나타났는데, 딘에게는 사람이 먹을 수는 있을지 확신이 안 서는 것들이었다. 샘이 고집한 덕분에 여러가지 식이보충제와 비타민도 챙기게 되었다.



그를 위해 새 신분증과 보험을 준비해준 샘은 그를 남성 오메가를 위한 산부인과 전문의에게 데려갔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들을 짝으로 여기는 일은 샘에게 성질이 발현된 뒤부터 겪어온 것이었지만, 이제 그들에게 있어 임신에 관한 대화는 또다른 장애물이 되었다.  



동생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딘이 조용한 곳에서 검사를 받느라 괴로워하는 동안, 샘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댔다. 샘이 딘의 '좁은 골반'에 대해 묻자 의사와 샘은 자연분만과 제왕절개에 대한 길고 굴욕적인 대화를 이어나갔다. 



딘은 정말이지 땅이 푹 꺼져 빨려들어가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성별을 알고싶나요?" 딘이 초음파검사를 받는동안 의사가 물었다.



"아뇨." 그와 동시에 샘이 불쑥 말했다. "네!"



의사는 그 둘을 번갈아보며 짐짓 서있었다. 샘은 화면에 뜬 흑백의 흐릿한 이미지를 응시하다 딘에게 그 특유의 울망울망한 눈빛을 건넸다.



딘은 한숨을 푹 내쉴 수 밖에 없었다. "좋아요."



"여자애에요."



의사의 말에 딘은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샘이 씩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 모습에 딘은 의사가 아기가 아니라 오징어라고 말했더라도, 아기 윈체스터가 생긴다는 사실에 빠진 샘이라면 분명 기뻐했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한편 그는 자신이 기쁜건지 실망한건지 감을 잡지 못했다. 안도감이 몰려온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딘은 그 사실을 집으로 돌아오며 깨달았다. 물론 벤처럼 차나 총과도 같이 그가 좋아하는 것들을 알려줄 수 있는 아들이 있다면 좋았겠지만... 의사가 남자애라고 했다면 그 아이가 자신처럼 오메가로 발현될까봐 전전긍긍했을지도 몰랐다. 



여자애라, 여자애라면 강인하게 키울 수도 있었고, 베타가 되든 오메가가 되든 딘이 당해야만 했던 온갖 수모들을 겪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설령 오메가로 발현된다 하더라도, 여성 오메가들은 소중하고 각별하게 대해졌다. 완벽한 메이트가 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으므로. 알파들은 오메가 여자아이들을 화장실에 가두고 강제로 범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대신 꽃과 초콜렛을 사주며 소녀들의 아빠를 '아버님'이라고 부르며 9시라는 통금시간까지 집에 데려다 줄 수 있게 허락해줄 수 있냐고 정중하게 묻곤 했다. 



딸. 딘은 그게 좋은 소식일거라고 결정내렸다. "메리라고 부르고 싶은데."



샘은 차창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흐으음'하는 소리를 내기만 했다.



"아니면 사만다라고 부르는게 좋겠네." 



딘의 점잔빼는 말투에 샘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기만 해봐."









20.





케빈은 샘이 자신에게서, 또 악마의 석판에게서 관심을 거둔 것에 마음이 놓인 모양이었다. 대신 예언자 일과 딘의 일 사이에서 자기만의 시간 활용을 하게 되었다.



그는 압도되는 샘의 존재를 피하기 위해 벙커의 창고에 숨곤 했다. 그러면서 지식의 사람들이 보관해 온 자료들을 정리한다고 주장했지만, 실은 조용한 곳에 숨어서 싸구려 잡지들을 읽기 위함이었다.



한편, 샘과 트랜 부인은 주방 식탁에서 카탈로그들을 펼쳐놓고 있었다. 



"이거 어때." 케빈의 엄마가 펜으로 동그라미를 치며 말했다.



"이걸로요?" 얼굴을 찌푸리며 물건 고르기에 빠져든 샘이 다른 팜플렛을 가져오며 말했다. "이게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트랜 부인은 불만의 표시로 입술을 오므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이게 나아."



딘은 그들이 뭘 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다 그게 무엇인지 알아보게 되었다...



윽. 카탈로그의 정체는 가구와 유아 용품이었다. 



샘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형, 어떻게 생각해? 이게 나을까, 아니면 저게 나을까?" 그가 다른 카탈로그를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딘은 몸을 굽혔다. 유아용 기저귀 갈이 테이블을 비교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유아용 테이블을.



트랜 부인의 선택은 이케아에서 파는 심플한 디자인의 제품이었고, 샘이 고른 것은 화려한 장식이 달려있는 전문 부티크의 제품이었다. "맙소사, 샘." 그가 투덜거렸다. "이건 기저귀를 가는 테이블이지 웨딩 케이크가 아니란 말야. 트랜 부인이 선택한게 맞는 것 같네."



케빈의 엄마는 자부심을 가지고 미소지었다.



"하지만 이건 수공예란 말이야! 평생 품질 보증되는 제품이라고!"



샘의 징징대는 소리에 딘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기저귀 가는 걸 가보로 남길 이유가 뭐가 있는데?"



그러자 샘이 퉁명스럽게 입술을 내밀었다. "좋아. 그래도 침대는 양보 못해. 이케아 제품은 질이 안 좋거든. 분리될지도 모르잖아."



트랜 부인은 샘을 곁눈질했다.



딘은 잔뜩 쌓인 팜플렛을 훑어보았다. 뭐가 뭔지 알아볼 수도 없는 가구들과 유아용품들에 동그라미가 쳐 있었다. 캔자스를 가로질러 이런 제품들을 사와야 할 것이라 생각하니 끔찍한 기분이 든 그는, 아무 페이지나 집어들어 다이퍼 케이크 항목을 펼쳐보았다. 다이퍼 케이크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냥 월마트 가서 이런거 사오면 되겠네."



"그렇게 하자." 트랜 부인이 너그럽게 동의했다.



"월마트?" 그러나 샘은 분개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반응이었다.



딘은 그저 샘을 바라만 보았다. "그럼 내가 오메가라는 건 어떻게 생각하냐, 새미?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거지같거든?"



그 뒤로도 샘의 칭얼거림이 이어졌지만 이내 그들은 케빈도 데리고 시내로 향했다. 딘과 트랜 부인의 협동으로 샘의 우스꽝스러운 선택에서 벗어나는가 싶었지만, 결국 동생이 고집한 몇몇 물건들을 구매하게 되었다. 일반 제품보다 두 배는 비싼 저자극성 기저귀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예였다.



딘의 생각과는 달리 지루하지 않은 일상이 이어졌다. 이런 일들은..귀엽기도 했다(물론 딘은 제 입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지만). 고래 모양의 욕조같은 물건들 말이다.



샘과 딘이 마트에서 산 유아용품을 어찌어찌 내려놓는 동안 트랜 부인은 뒷좌석에 앉아있었다.





~~~





딘은 방문 너머로 코끼리가 탭댄스를 추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자 깨어났다. 그리하여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확인하기 위해 로브를 두르고 방을 나서는 그였다.



소리의 원인은 샘이었다. 그는 아무도 쓰지 않는 침실 한복판에 앉아있었다.



딘은 내부를 조심스레 들여다보았다. 동생은 침대나 다른 가구들을 정리하고 있었고... 방에는 먼지가 풀풀 날렸다. 



"벽도 칠해야 할까?" 그가 생각에 잠겨 물었다. "창문이 없어서 어둡잖아."



"핑크색같은 걸로 칠하게?"



"실은 노란색이 어떨까 싶었어." 



딘의 비꼼에 샘이 아주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 말에 노란색은 안 된다며 거절한 딘은, 그곳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색'을 볼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활기찬 녹색을 선택했고 결국 방은 샘이 선택한 노란색 대신 녹색으로 칠해지게 되었다. 딘이 생각하기에 이런 일들은 무의미해보였지만, 샘이 매우 열중하는 일이었기에 굳이 방해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러다 딘은 아멜리아의 집에 있던 쿠션과 러그가 그녀의 취향이 아니라 샘의 취향은 아니었을지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이런 일에 있어서는 샘이 꽤 쓸만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가구를 조립한 그들은 나머지 물건들을 벽으로 치웠고... 그건... 꽤나 이상한 일이었다. 누가봐도 아기 방으로 보였다. 딘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것들을 바라봤다. "우리가 아기 방을 꾸미다니."



"형이 캐스의 아이를 가졌다는 것도 아직 믿기 힘드네." 샘은 선반에 교육용 장난감들을 조심스럽게 올려놓으며 쾌활하게 말했다. 



샘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뒤 처음으로 캐스가 언급되었다. 그 즉시 마음이 따끔거렸다. 





~~~




딘도 방이 꽤나 멋지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가끔 아무도 보지 않을 때면 안으로 들어가 잠시간 둘러보곤 하는 그였다. 물건들을 집어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으면서. 그의 딸을 위해 모든게 준비되었다는 사실은 성가신 오메가의 본능을 안심시켜주었다. 



딸.



아직도 익숙해지지 못한 말이었다. 왠지 두렵기도 했다. 속이 메슥거렸다. 현실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




첫번째 시험은 헬하운드를 죽여 그 피로 몸을 적시는 것이었다. 



딘은 샘에게 그 일을 시켜야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딘도 자신이 시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알고있었다. 그가 시험을 치뤄야 마땅해도 말이다. 샘은 훗날 평범한 삶을 살아야 할 사람이었다. 딘이 아니라. 딘은 절대 아니었다. 그 일로 인해 샘과 오랫동안 논쟁을 치뤄야했고, 결국 딘에게는 시험을 함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대신 거쓰가 샘의 오른팔이 되었고, 딘은 물러나야만 한다는 사실에 좌절감에 빠졌다. 딘은 마구간을 청소하며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엿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 중 하나는 딘 윈체스터가 오메가이며 임신했다는 사실에 거쓰는 정말로, 정말로 당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바보같이 미소지으며 "축하해!"라고 말하고선 딘에게 따뜻한 포옹을 건네주었다.. 그게 전부였다. 다른 말은 없었다.




그들이 돌아왔을 때 샘은 악취가 풀풀 나는 검은 피에 흠뻑 젖은 채였다. 딘은 행복감과 공포를 동시에 느꼈다. 거쓰는 그저 미소지으며 "아싸!" 라고만 했지만 샘은 창백해져 몸을 떨었다. 첫번째 시험이 이 정도로 안 좋다면- 나머지 두 개는 얼마나 심할지 감도 안 잡혔다. 게다가 그가 갇혔을 때 딘이 도와줘야 한다면? 딘이 돌봐줄 수 없기 때문에 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는 어떻게 해야할 지 알 수 없었다. 





~~~





거쓰와 함께 벙커로 돌아온 그들은 샘의 헬하운드 세례를 축하했다.



케빈은 마침내 터널 끝에서 빛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더 이상 악마들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냥 신이 난 모양이었다. 딘이 침대로 향할 때 거쓰와 트랜 부인은 값싼 와인을 마시며 무언가에 대해- 딘은 주제가 어떤 것인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이 매우 열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케빈과 샘은 에노키언에 대해 열띈 토론을 벌이다 석판에 맥주를 엎지르고 말았다. 





~~~




하마터면 심장 마비가 찾아올 뻔 했다. 무언가가 그를 깨웠다. 돌아누워 주먹을 내리치자 베개가 살짝 부풀어올랐다. 무언가가 움직일 때마다 계속해서 몸을 뒤척였다.  



눈을 번쩍 뜬 그는 어둠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또다시 시작되었다. 그 생각에 즉시 약간 통통해진 배에 손을 올려놓았다. 일 분이 지났다. 그러다 이 분이 지났다. 딘은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그리려고 했으나 또다시 일이 일어났다. 아이가 움직이는 것이었다. 



놀랍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스스로 입술을 움직였다는 것도 의식하기 전에 어둠 속에 한 단어가 울려퍼졌다. "캐스!" 



날개 소리가 들릴 거라 반쯤 기대했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거품처럼 차올랐던 기쁨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어딨는거야, 캐스?" 그가 조용히 물었다.





~~~




거쓰는 며칠간 머무르며 서재에 있는 책들을 읽었지만, 이내 충분하다고 생각되었는지 벙커를 떠났다. 



케빈과 샘은 두번째 시험에 열중하고 있었고, 딘은... 한 달이 지나자 정말.. 임신했다. 소변때문에 화장실에 쉴틈없이 들락거렸으며, 열네살짜리 여자애처럼 기분이 오락가락했고, 낯선 음식(이를테면 시금치 카넬로니 같은 것들 말이다. 세상에.)을 찾게 되었으며, 배가 정말로 부풀어올랐다.



아기 메리는 조금씩 움직였다. 딘이 잠에 들려고 할 때면 그녀는 딘과 연결된게 기쁜지 몸을 마음껏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샘은 딘의 배에 손을 올려놓으며 아기의 발차기를 즐겼지만, 딘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샘이 그의 배를 다독이며 아기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것 뿐만 아니라 알파가 그를 만진다는 것 자체가 묘한 일이었다. 그의 몸은 본능적으로 긴장했고 진정할 수 없었다. 샘은 피를 나눈 그의 동생이었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여전히 부자연스러웠다. 딘의 알파가 아니었으니까. 그에게 손을 올리는 것은 그가 아닌 캐스여야만 했다.



그래도 샘은 아기 메리에게 말을 거는 것을 즐겼고, 그 모습은 굉장히 바보같아 보였지만 딘은 그저 눈동자를 굴리고선 어떻게든 견뎌냈다.





~~~





극심한 고통과 함께 깨어났을 때 그는 임신 22주 차였다.



생각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고, 배에서 느껴지는 심각한 통증에 침대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고야 말았다. 그는 샘을 불렀다. 고통이 담긴 지독한 향이 그의 주위를 구름처럼 맴돌았다. 극심한 경련이 허리부근에서 느껴졌다. 고문과는 견줄 것이 못되었으나, 숨을 쉬는 동안 찾아오는 통증은 여지껏 느낀 것중 가장-



방문이 덜컥 열리고 동생이 급하게 들어왔다. "형?"



딘은 그에게로 손을 뻗었다. "새미!"



그의 옆으로 다가온 샘은 어둠 속에서 겁에 질린 듯 물었다. "형, 무슨 일이야?" 그의 큰 손이 딘의 어깨를 감싸고 그를 끌어당겼다.



"몰라... 일어났는데 너무 아파서-" 딘이 겨우 말을 내뱉었다.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아."



케빈과 트랜 부인이 문간에 나타났다. 트랜 부인은 이미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대고 있었다.



"딘을 윗층으로 데려가서 앰뷸런스를 불러야 해." 케빈이 말했다. 딘은 그러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계산했다. 앰뷸런스가 허허벌판의 버려진 건물에 찾아올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샘도 역시나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앰뷸런스를 기다릴 시간이 없어. 내가 운전할게." 딘을 끌어올리며 그가 말했다. 신혼 첫날 밤의 신부처럼 옮겨진다 하더라도 너무 고통스러워서 항의할 힘도 없었다. 적어도 이번만은 알파가 그를 돌봐준다는 생각에 오히려 안도되었다. 그게 자신의 메이트가 아니라 동생이다 하더라도.



그의 메이트.



캐스. 캐스라면 그를 치료해 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캐스를 불러!" 그가 동생에게 말했다. "필요하다고 전해."



고개를 끄덕인 샘은 서투르게 일어나 걸음을 늦추지 않고 케빈을 지나쳤다. 



그들을 주차되어있는 임팔라로 이끈 트랜 부인은 잠금장치를 풀고 차 문을 열어주었다.



딘은 자신이 졸도라도 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으로 기억하는 것은 트랜 부인의 다리에 머리를 대고 뒷좌석에 눕혀졌다는 것이었으니까. 앞좌석에 앉은 케빈은 그를 돌아보았고 샘은 휴대폰을 한시라도 귀에서 떼지 않았다.



임팔라에 시동이 걸리는게 느껴졌다. 내부의 친숙한 향과 엔진의 소리는 딘을 약간 진정시켜주었다. 고통이 복부를 타고 올라 너울거리자, 몸을 움츠린 그는 힘겹게 흐느꼈다. "캐스!" 그는 양 손을 모으며 소리질렀다. 샘이나 트랜 가족이 듣든 말든 기도를 해야만 했다. "카스티엘... 네가 필요해. 당장 와. 제발..." 무언가가 내장을 움켜쥐며 뜨겁게 압박하는 기분이었다. "부탁이야 캐스..."



샘은 서둘러 속력을 냈고, 딘이 미끄러지는 것을 막아주는 것은 오직 트랜 부인의 손길 뿐이었다. 뜨겁고 축축한 것이 파자마를 적셨다. 공기가 피와 다른 무언가의 냄새에 휩싸여 그의 배를 휘저었다. 무언가를 내뱉고 내던지는 기분이었다. 귓가에 다 잘 될거라고 빌어주는 트랜 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팔라가 달리는 동안 그는 카스티엘에게 기도했다. 캐스, 캐스. 제발 와줘 캐스... 네가 필요해 부탁이야제발  




여전히 그가 오기를 바랐다. 뒷좌석에서도, 응급실에서도, 밝은 빛이 감도는 수술실에서도. 딘의 귀는 날개 소리를 애타게 찾았다. 그는 속삭이고, 웅얼거리며 메이트에게 빌었다. 




그러나 그는 찾아오지 않았다.





~~~



눈을 떴을 때 트랜 부인과 샘이 그의 옆에 있었다. 한낮이었다. 몇 시간동안 쓰러져있던 모양이었다. 케빈과 그의 엄마는 잠옷이 아닌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샘은 자리를 뜬 적이 없는지 여전히 체크무늬 잠옷바지에 늘어진 티셔츠를 입은 채였다. 티셔츠는 얼룩투성이였다. 딘은 셔츠에 묻은 갈색의 얼룩이 바로 마른 피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의 피였다.



긴 호흡을 내뱉은 동생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그의 손을 꽉 쥐었다. "거의 죽을 뻔 했어, 형." 딘은 그의 말에 숨겨진 진정한 공포를 알아차렸다. "과다출혈이었거든." 



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려 애썼다. 하지만 기억나는 것은 없었다. "혹시...?"




다른 말이 필요 없이 샘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었다. 




공허함과 냉기가 찾아왔다.



믿을 수가 없었다.




카스티엘이 오지 않았다.








~~~








"아이를 안았어." 한참 뒤 샘이 말했다. "아주 작았는데도 세 시간동안 버텨주더라."




동생이 울음을 터뜨렸다.









딘은 그러지 못했다.








*옮긴이의 말


유산.


또다시 울었습니다.


울 수 밖에 없는 내용이었어요. 이 글을 읽은 건 벌써 일 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맨 처음 이 글을 읽을 때는 캐스가 어째서 딘에게 무심한지 알 수 없었는데 뒷 이야기를 보니 이해가 되면서도... 시즌 8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딘이 너무 안타까운 건 어쩔 수 없는 것...ㅠㅠㅠ... 번역하면서 다시 읽으니 문장과 문단 하나하나가 가슴을 절절하게  후벼파는 느낌이었어요. 정말이지... 


사람 감정을 쥐락펴락 하는 작가님 문체에 비해 부족한 번역 솜씨지만 재밌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요즘 바빠서 트위터에 들락날락 거리는 것 빼고는 번역을 거의 못하고 있네요 ;ㅅ;.. 이 점 양해부탁드려요. 



*각주

  1. 초반에는 케빈이 딘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으로 번역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말을 놨다는 설정으로 번역했습니다. 사소한 설정이지만 적어두는게 좋을 것 같아서 :-) [본문으로]
  2. Lisa Frank라고 검색하면 각종 유니콘 캐릭터들이 나옵니다... [본문으로]
  3. 향수 이름. [본문으로]